경복궁-건청궁---명성황후-살해의-현장에-서서-분노한다
경복궁 건청궁 - 명성황후 살해의 현장에 서서 분노한다 - 158호(2021년5월+6월) 혜문 / 대표 1895년 을미사변 당시 명성황후 살해 현장 건청궁. 1909년 일본에 의해 철거된 지 100년만인 2007년 복원되었다. 명성황후 국장도감 의궤 돌아오다 2006년 일본 궁내청 도서관에 방문, 조선왕실의궤를 직접 열람했던 날을 기억한다. 비가 억수같이 내리던 날이었다. 에도성 성문을 통과해서 들어간 일본 궁내청 왕실도서관 ‘서릉부’에는 명성황후의 슬픈 장례식에 대한 기록 ‘명성황후국장도감 의궤’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일본 도쿄
슈베르트-숭어가-아니라-송어였다고?
혜문 / 대표         2010년 중학교 교과서에 실린 슈베르트 해설. 숭어로 표기 (2021년 3월+4월) -157호 2009년의 겨울, 눈이 발목까지 쌓였던 날 저녁 촌티를 면해 볼까해서 찾은 카네기홀에서 슈베르트의 피아노 5중주 숭어를 들었다. 로비에서 나누어준 인쇄물에 쓰여진 ‘Trout’이란 제목이 궁금해서 사전을 찾아 보니, Trout은 송어라고 적혀 있었다. 연주회장에서 아름다운 피아노 오중주의 선율을 들으며, 생각들이 송어처럼 파닥거렸다. 나는 오래전 기억을 떠올렸다. 고등학교 시절 음악시간에 어떤 친구가 선생님
의정부-‘길서낭’-의-죽음을-위한-진혼곡鎭魂曲
의정부 ‘길서낭’ 의 죽음을 위한 진혼곡 혜문 / 대표 의정부시 고산동 갓바위 마을에 있던 길서낭. 동네 주민들의 증언에 의하면 500년 정도된 신목神木이라고 한다. 갓바위 마을을 지키는 수호신으로 동네에서 수백 년간 치성을 올려 왔다. 의정부시에 마지막으로 남았던 성황당이었다. 2018년 고사했다. (사진 출처 의정부시 공식 블로그) (2021년 01+02 -156호) 내 머릿속에 남아 있는 최초의 신비한 체험은 의정부 고산동 갓바위 마을의 ‘길서낭’ 이었다. 10살 무렵의 어느 저녁, 어둠이 이제 막 깔리기 시작한 시골길을 나는
보물-809호-자경전-꽃담에서-틀린-글자를-발견하다
보물 809호 자경전 꽃담에서 틀린 글자를 발견하다 혜문 / 대표 자경전 꽃담 앞에서 년年 자가 이상하게 쓰여져 있는 것을 발견, 확인하는 모습. 그야말로 우연이었다. 경복궁 산책길에 자경전 꽃담을 걷다가 나는 흠칫 심각한 의문에 빠졌다. 전서로 쓰여진 년年자에 획수가 하나 빠져 있는 게 보였다. “어째 획수가 하나 부족하지? 전서로 쓴 글씨에는 획수를 하나 빼나?” 순간 호기심을 이기지 못하고 나는 전서로 년年자를 어떻게 쓰는지 검색해 보았다. 아니나 다를까 년年자는 전서로 써도 정자인 해서와 별다를 차이가 없었다. 문화재청 관계
애국가의-작사가는-누구인가?
애국가의 작사가는 누구인가? 혜문 / 대표 애틀랜타에서 애국가 가사지를 확인하다 2014년 1월 나는 애틀란타의 에모리 대학에서의 한 장의 문서를 만났다. 애국가 작사가 문제를 해결할 증거를 살펴보기 위함이었다. 광복 70년이 넘도록 애국가의 작사가를 둘러싼 논란은 크게 윤치호설과 안창호설로 양분할 수 있다. 윤치호설의 내용은 ‘애국가는 윤치호가 1907년 작사, 그가 설립한 한영서원 교재로 편찬한 ‘찬미가’를 통해 널리 보급했다’는 것이고, 안창호설을 지지하는 쪽은 “애국가를 대성학교가 앞장서 보급했고, 주역은 안창호”라며 맞서고
북한에서-녹차가-생산된다고?
북한에서 녹차가 생산된다고? - 강령녹차 드디어 남한에 오다 혜문 / 대표  북한에서 2017년 생산된 강령녹차.  김정일 위원장이 강령에서 재배된 녹차를 은정차라고 명명함에 따라 은정차라고도 불리운다. 2018년 5월 통일부는 문화재제자리찾기(대표 혜문)가 강령녹차를 반입하는 것을 승인했다. 에이 설마 그럴 리가? 2014년 조선불교도연맹과의 만남을 위해 통일부 승인을 받고 중국 심양의 조선식당을 간 적이 있었다. 중국 심양의 북한식당에서 북한에서 녹차가 생산된다는 말을 들었을 때 믿지 않았다. 고등학교 지리시간 차나무와 대나무는
조선의-이마에-새긴-주홍글씨-–-인정전-이화문
조선의 이마에 새긴 주홍글씨 – 인정전 이화문  (151호) 혜문 / 대표 여러분 저 용마루에 새겨진 이화문양 보이십니까? 1980년대의 어느 봄날, 중학교 3학년때의 봄날 나는 창덕궁에 처음 가보았다. 당시 창덕궁은 안내원의 안내에 따라 정해진 시간에 입장하는 형태로 엄격하게 관리되던 시절이었다. 안내원은 사람들을 모아 인정전 앞에서 이렇게 말했다. “ 여러분 저 용마루에 새겨진 이화문양 보이십니까? 이곳은 대한제국 황제였던 순종황제가 거쳐하던 곳이기 때문에 용마루에 대한제국 문양인 이화문양을 새겨 넣었습니다. 용마루에 이화문을
병자호란의-침략자-홍타이지-칼을-서울에서-만나며
병자호란의 침략자 홍타이지 칼을 서울에서 만나며 -홍타이지에게 잡혀간 조선포로 수십만의 울음을 생각한다 혜문 / 대표 까맣게 잊고 있었다고 생각했던 고통의 시간들이 있다. 평상시 느껴지지 않던 것들도 상처를 짚어보면 와락 현현할 듯 다가와 버린다. 몸에 새겨진 유형의 상처는 끝내 사라지지 못한다. 상처는 말을 건네면은 기억의 저장창고를 나와 생생한 고통의 증언을 시작한다. 언제 왜 나는 상처를 입었고, 그래서 혼자 감내해야했던 시간은 잊혀지지 않았던 것이다. 상처를 보면 고통은 여전히 사라지지 않았다는 것을 실감하게 된다. 문화재청